콜드 케이스: 서울
1X01
정의
1.
1996년, 서울 소재 명문대에 다니던 대학생 정인서가 골목길에서 둔기에 맞아 사망한 채 발견됩니다. 젊음의 고민과 방황 속에서 매일같이 친구들과 술을 마시던 피해자는 사건 당시에도 만취 상태였기에, 경찰에서는 취객을 노린 강도 사건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별다른 단서도 없었기에 사건은 미제로 남습니다.
시간은 흘러 현재, 상가 건물 화장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현장을 조사하던 서울지방경찰청 강력계 형사 백나희는 갑작스런 부름을 받고 경찰청으로 돌아갑니다. 1996년 사건 당시에 범인과 피해자의 말싸움 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이 찾아온 것입니다. 암에 걸리고 나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으며. 당시에 귀찮고 무섭다는 이유로 신고하지 않았던 잘못을 뒤늦게나마 바로잡고 싶다고 말하는 목격자. 결국 백나희는 1996년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피해자와 범인이 말싸움을 했다면, 기존에 생각하던 것처럼 강도 사건이 아니라 면식범에 의한 범행일지도 모릅니다. 마침 피해자 주변에는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이 많았습니다. 고생해서 대학에 보낸 자식이 매일 술만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한 아버지부터, 사회를 보는 견해 차이로 술자리에서 종종 언성을 높이며 다투었던 친구들까지. 백나희는 신입 형사 강도혁과 함께 사건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며 한 발짝씩 진실에 접근해갑니다.
2.
수사물 시리즈의 시작으로 아주 무난한 첫 화입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계속될지 가볍게 맛을 보여 주고, 등장인물 소개도 빼먹지 않고. 주인공인 백나희 형사는 원작의 릴리 러시와 거의 비슷한 인물로 그려집니다. 다소 냉정해 보이지만 유머감각도 있는 인물이죠. 한편 남성 주연이라 할 수 있는 강도혁 형사는 원작의 스카티 발렌스와는 조금 다른데, 스카티가 정이 많고 격한 감정에 휘둘리는 인물이었다면 강도혁은 더 귀여운 '신참 후배' 캐릭터입니다. 두 사람의 케미가 나쁘지 않아요.
주요 인물이야 앞으로도 계속 나올 테니까, 여가서 나머지까지 전부 소개할 필요는 없겠죠. 대신 사건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원작 <Cold Case>의 1화 "Look Again"은,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다소 지루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 자체에 그다지 인상적인 부분이 없었고, 과거 시대상이나 역사적 사건과 연관된다는 컨셉조차 시즌 1 당시에는 다소 흐릿했어요. 한편 일본판 리메이크의 1화는 원작의 2X11 "Blank Generation"을 거의 똑같이 가져왔더군요. 안전한 시도를 한 거죠.
반면에 <콜드 케이스: 서울>은 쉬운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제목인 "정의"는 원작의 5X10 "Justice"를 연상시키지만, 내용은 이 시리즈만의 오리지널입니다. 사건 자체도 원작의 1화보다는 훨씬 흥미롭고, 1996년 한국의 시대상이 중요하게 등장하기도 하죠. 한 마디로 줄이자면, 시작이 좋았습니다.
이건 정말 사소한 건데, 저는 이 에피소드에서처럼 제목이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 걸 정말 좋아합니다. (스포일러) 범인인 신동진은 사회의 "정의"를 위해 사회악을 처단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정작 그 분노는 '부잣집 도련님'이나 '사치에 물든 여자'처럼 추상적인 대상에게 향할 뿐이죠. 그 사실을 깨달은 정인서가 자신과 뜻을 같이하기를 거부하자 홧김에 때려 죽이고 도주하기까지 했고요. 주인공들이 사실을 밝혀내면서, 오랜 시간이 흐르기는 했지만 결국 "정의"는 구현됩니다. 두 종류의 "정의"가 등장하고 대비되면서, 동시에 이 시리즈가 앞으로도 과거 구현되지 못한 "정의"를 완성하는 내용을 보여주리라고 암시하는 것이죠.
3.
▶도입부에 쓰인 곡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입니다.
▶결말부에 쓰인 곡은 TOY의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입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 걸맞게, 두 곡 모두 제목에서부터 전체 시리즈의 내용을 암시하네요. 이런 꼼꼼함 좋아합니다.
▶(스포일러) 작중 주요 소재이자 범인의 간접적 범행 동기이기도 한 안두희 살해 사건은 1996년 10월에 일어났습니다. 버스기사였던 박기서가 김구 암살범인 안두희의 집에 침입, '정의봉'이라고 쓰인 홍두깨로 구타 살해한 사건이죠.